
* 줄리언 반스 장편소설, 최세희 옮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 2012)
잘 써진 좋은 소설을 읽고 나면 머릿속이 멍-해진다. 어떤 감정도 느끼기 어렵고 그저 멍-한 상태. 이런 상태를 난 소설에 속수무책으로 ‘압도’ 당했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잘 짜인 비단 같은 소설. 어떤 틈이나 흠을 찾으려 해도 그런 점을 일부러 찾기에는 너무나 잘 읽히는 소설. 줄리언 반스의 신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내겐 그런 소설 중의 하나다.
소설은 주인공 토니와 토니의 친구 에이드리언. 그리고 토니의 여자친구였지만 토니와 헤어진 뒤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는 베로니카. 이 세 사람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보면 아주 흔한 ‘삼각관계’의 스토리를 쉽게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뻔한 상상에 전도유망한 수재였던 에이드리언의 자살이라는 ‘비수’를 꽂으며 소설을 긴장상태로 몰아넣는다. 에이드리언의 마땅한 자살 동기를 발견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노년의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자기에게 일기장을 남겼다는 것과, 토니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던 편지를 에이드리언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온했던 노년의 일상에 다시 한번 큰 파문이 일고……. 토니는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며 베로니카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하게 된다. 그렇게 소설은 예상치도 못했던 마지막 장의 ‘반전’을 향해서 달려간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한 구절이 있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란 구절이다. 이는 토니와 에이드리언이 풋풋한 고등학생 시절 에이드리언이 역사시간에 인용한 말이다. 얼핏 치기어린 고등학생들의 지적허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에이드리언의 이 말은 소설 전체를 통해서 많은 고민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소설의 전반부(노년의 토니가 베로니카와 해후하기 전)는 토니의 기억만으로 서술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부정확한 토니의 ‘기억’과,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불충분한 ‘편지 한 장’이 만나면서 이 이야기가 탄생한 것 아닌가. 그것을 우리는 토니의 역사라고 부르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 역사의 정의를 베로니카에게 대입해보면 어떨까. 토니의 역사와는 다른 또 다른 역사가 써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에이드리언의 자살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소설을 읽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또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된 오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런 오해가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소설 속 인물들의 오해도 이렇게 혼란스럽고 가슴 아픈데, 하물며 현실 속의 우리들은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인생, 단 한번뿐인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를 이겨내기 위하여 사람들은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소설’이다. 그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수많은 인생과 ‘오욕칠정’을 대리체험한다. 오늘 한 번만이라도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통해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보길 감히 권해본다. 토니가 되어보거나, 토니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베로니카가 되어보거나, 욕조 속에서 동맥을 긋기 전의 에이드리언이 되어보자. 우리는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12. 4. 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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